고려 최후의 항쟁 삼별초 봄날 오후 찾은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선착장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석모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석모도로 들어가려는 차량과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던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선 몇 척과 과자를 기다리는 갈매기들, 젓갈과 회를 파는 어시장 상인들의 목소리만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닐 뿐이다. 포구 한 켠에는 하르방과 진돗개 동상이 서 있다. '삼별초군호국항몽유적비'란 바위도 눈에 들어온다. 748년 전, 이 자리에서 삼별초군이 떠났다는 스토리텔링을 보여주는 상징물들이다. 반몽파인 최씨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건 친몽파 무신들이었다. 김준 등은 60년간 이어진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수장 최의를 죽이고 몽골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추진한다. 1259년 4월 고려의 태자 식(植)이 40여명의 신하들과 함께 몽골에 입조한다.. 더보기 인쇄술의 성지 강화도 꽃 꽃잎들이 흩날려 꽃보라를 만들었다. 오백나한상 위로, 커다란 와불이 누워있는 법당의 지붕 위로도 함박눈송이 같은 꽃눈들이 떨어져 내렸다. 낙가산(洛迦山) 눈썹바위 아래 마애관음좌상의 미소는 봄햇살을 닮아가고 있었다. 대웅보전 앞마당은 온통 연등의 바다. 형형색색 연등의 물결 위로 카키빛 바다가 출렁거렸다.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니는 봄햇살의 조각들에 눈이 감겼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봄은 그렇듯 눈부신 빛깔로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에서 '팔만대장경'의 흔적을 발견한 때는 지난 2015년이다. 당시 오용섭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東文選)과 중국 (四庫全書)에서 팔만대장경 판각과 보관의 총 본산이 강화도라는 사실을 찾아냈다. 진주 용봉산 영암사를.. 더보기 6.강도시기의 고려유물(상) ▲ 고려왕조는 강화도로 천도한 1232~1270년 봉은사지 오층석탑(위), 강화동종(아래)을 포함해 눈부신 문화유산을 남긴다. 현재까지 문화재로 지정된 강화도의 고려유물은 26개이다. 왕릉·금속공예… 문화재 지정 26개 팔만대장경도 16년간 강화서 판각 39년 짧은기간에 눈부신 유산 남겨 강화는 지금 분홍빛의 물결로 출렁이는 중이다. 고려산을 흠뻑 물들인 진달래꽃들은 오는 14일부터 더욱 만개해 관광객들을 맞을 것이다. 22일까지 9일간 열리는 '고려산 진달래축제'에선 해발 436m의 산 정상과 비탈 등 10만㎡에 피어난 진달래꽃길을 따라 거닐 수 있는 행복을 맛 볼 수 있다. 미세먼지가 물러가고 모처럼 하늘이 맑게 갠 날, 봉천산 산비탈을 오른다.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 193. '봉은사지 오층석탑'..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